아이가 말레이시아에 온 지 1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거의 8년 전,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같은 반에 영국에서 온 친구가 전학을 왔다는 얘기를 아이가 꺼냈다.
그때는 나도 한국을 나온 지 얼마 안 된, 소위 한국물이 덜 빠진 상태였다.
아이한테 이 말을 듣고 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대뜸 내뱉고야 만다.
"어, 그럼 노란 머리야?"
이 말을 듣고 평소에도 표현이 세밀하고 자세하지 않은 아이의 눈이 갑자기 멀뚱멀뚱해졌다.
그리고는 시원한 대답은 내놓지 않고 밥숟갈을 입에 넣었다.
참을성 부족한 K-mom은 재차 묻는다.
"서양 애 얼굴이겠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무식하고 무례한 질문이지만,
그때는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다닌 지도 1년밖에 안 되었고 여러 인종들이 모이는 사회에 그저 감탄을 연발하며 지낼 때였다.
엄마의 상기한 얼굴에도 아이는 답답하리만큼 대답을 하지 못했다.
"..."
못난 엄마는 영어 사대주의에 기를 펴지 못하는 자격지심에 이기지 못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아이를 다그쳐볼 심산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몰라..."
"뭐? 몰라? 왜 몰라? 안 친해? 친하게 지내!"
나는 참지 못하고 못난 욕심을 드러내놓고 말았다.
아이가 전학 온 친구와 별로 교류가 없는 걸로 자체 결론을 내린 나는 몇 달 후 학교 행사에 가서야 입을 다물고 말았다.
PTM(Parent Teacher Meeting)이라고 공개 학부모 상담하는 날 아이가 누군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쟤가 전학 온 걔야."
"!"
고개를 돌린 나는 노란 머리냐는 내 질문에 아이가 왜 대답하지 못하고 난감해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리에는 까만 터번이 야무지게 둘러져 있었다!
힌두인지 이슬람인지 종교는 알 수 없었지만 인도계인 듯한 아이의 얼굴은 그 나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말갛고 순해 보였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나는 내 눈에 씐 세상을 향한 편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아이를 데리고 한국의 학부모 사회를 벗어나고자 말레이시아로 온 나는 아직도 꼬장꼬장한 인종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던 게 아닌가?
영국에서 왔으니 당연히 노란 머리 서양인일 거라고 생각했다니!
말레이시아로 이주한다고 인사한 뒤 1년이 지나 다시 만난 외숙모님이 내뱉은 말,
'아직도 너 동남아 사니?'랑 뭐가 다른가?
그 후로 아이들의 방학 때마다 말레이시아와 주변 국가들을 부지런히 여행하면서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특히나 와 보지 않았으면 당연한 듯 약간은 내려보며 떠올렸을 '동남아'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축복인지 깨달았다.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건 같은 지구에 등을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양심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배려하며 아웅다웅 살아가는 '동남아' 말레이시아에서 배웠다.
내가 이럴진대 내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태풍도 지진도 없는 말레이시아에 살 수 있게 외지인을 허락해 준 말레이시아에 고마움마저 느껴졌다.
그래서 여기 있는 동안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적과 인종은 친구가 되는 데 아무 상관도, 아니 전혀 신경 쓸 거리도 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도 받아들이고 접하게 되어 다문화 지구인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Field Trip(수학여행 또는 소풍)를 가게 되면 재미있는 구경이 펼쳐진다.
아이가 7학년 때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일단 7학년임을 감안해 여행지는 가까운 싱가폴이었다.
공항에 도착해 출국 심사를 앞두고 비로소 아이들은 서로 다른 색깔들의 여권 표지를 보고 친구들이 이렇게 다양한 국적인 것을 신기해하며 서로 구경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인종은 중국계이지만 국적은 호주인 친구,
일본인 엄마와 중국계 말레이시안 아빠를 둔 일본, 말레이시아 이중 국적인 친구,
무슬림이지만 서양계 아제르바이잔 국적 친구,
기독교에 나이지리안 국적 친구,
엄마는 인도계 말레이시안, 아빠는 인도인을 둔 인도 국적인 친구,
같이 인솔하셨던 과학 선생님은 소말리아 태생의 소말리아 국적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영국에서 쭉 교육을 받고 대학까지 졸업하신 분이셨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은 영국 국적.
위에서 언급했던 그 터번 두른 친구는 인도계 영국 국적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말레이시아로 온 것이었다.
각자의 신념에 따라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지만
그것이 '너는 왜 달라?'로 의아한 것이 아니라,
'넌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다양한 물이 섞여 들어와 서로의 물길을 방해하지 않고 흘러가는 개울처럼 그냥 지구를 살아가는 지구인인 것이다.
아이와 함께 같이 성장한다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니
말레이시아에서의 삶이 화려하게 내놓을 것 없는 일상이지만 내 삶의 일부가 평온함으로 단단하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느긋한 일요일 오후,
저 멀리 짙은 먹구름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스콜을 기다리며 얼려 놓은 두리안을 꺼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