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오시면서 그런 이미지를 꿈꿀 것이다.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아이들이 여유롭게 물놀이하는 것을 파라솔 아래 앉아서 느긋하게 바라보는 엄마,
손에는 색깔도 영롱한 칵테일...
일 년 내내 여름인 말레이시아에서 수영을 하지 않는다는 건,
또는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넝쿨째 들어온 호박을 뻥 차버리는 것 같은 것이다.
어디서든 언제든 수영할 수 있는 시설이 있고 따뜻하고 녹지근한 바람이 부는 곳이 말레이시아이다.
그런데 아이가 물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수영클럽에 데리고 가는 건 너무나 귀찮아하고 번거로워하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그럴 땐, 내가 한국의 그 모든 익숙함과 편리함을 두고 왜 여길 왔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물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일단 사교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시는 게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는 데 여러모로 얻는 점이 많다.
우선 말레이시아에는 수영 클럽이 아주아주 많다.
구글맵을 열고 근처 수영 클럽을 검색하면 리스트가 뜬다.
몇 군데만 들어가서 봐도 대략 정리가 된다.
콘도로 코치를 불러서 기초 수영을 어느 정도 배워도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초가 다져졌다면 다른 아이들과 교류도 할 수 있고 서로 기록도 비교할 수 있는 수영 클럽에 가서 배우는 것이 좋은 점이 많다.
우선 수영 클럽에 가면 대부분이 로컬 아이들이다.
수영도 배우고 덤으로 완벽한 영어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수영 클럽에서 대회도 많이 개최하기 때문에 로컬 부모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벤트를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현지인들만이 아는 여러 정보를 얻게 된다.
처음 내가 수영 클럽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경쾌한 음악이 큰 스피커에서 나오고 부모들이 기다리는 공간과 수영장이 허리 정도 높이의 담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풀사이드 바에 온 듯한 북적거림과 흥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비라도 온다면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더해져 정말 장관이었다.
드럼 소리 같은 빗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하루 2, 3km 정도를 훈련하는데,
끝나고 난 후 아이들 얼굴이 항상 상기되어 있었다.
현지 친구들과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다양한 언어들.
중국어, 말레이어, 광둥어, 영어.
처음으로 내가 한국을 벗어나 다인종 국가에 살고 있구나 느꼈던 순간이었다.
말레이시아 수영 협회에서 하는 수많은 수영 대회에 참가할 때는 수영 클럽 티셔츠를 맞춰 입고 간다.
같은 클럽 아이들끼리 응원하면서 끈끈함 같은 게 자연스럽게 생기고 연말 송년 파티는 소속감의 절정을 이룬다.
나는 부모 입장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어린 시절 이런 추억을 쌓을 수 있다니 참 많이 부러웠다.
수영 대회에 갈 때는 네임펜이 필수다.
팔뚝에 자신이 출전할 이벤트 넘버, 히트 넘버, 레인 넘버를 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에도 지워지지 않는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고 짱짱하다.
국제 경기도 하는 수영장이라 처음엔 그저 신기했었다.
전광판에 아이 이름이 나오는 것도, 터치 패드에 손을 닿는 순간 바로 기록이 전광판에 뜨는 것도.
TV에서나 보던 것을 보게 되니 그저 신기한 데다 출전한 아이들의 모습들이 너무 진지하고 열심이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뭉클했다.
휘슬 소리에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이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았다.
수영을 계속하면서 좋은 점 중 또 한 가지는 학교 수영 대표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 수영 대표가 되면 학교 간판을 달고 많은 리그들에 참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학생 기록에도 기재되고 스스로의 소중한 레쥬메가 된다.
학교 안에서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건 둘째치고 각종 학교 대항 리그, 그리고 말레이시아 국제 학교 모임 대회인 AIMS, 아시아 영국 국제 학교 연합인 FOBISIA 등에 참가해 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
대학 입시를 치러보니 보통 쉽게 말하는 Extra curriculum (EC)라는 것은 학생이 오랜 시간 꾸준히 일궈오면서 자신의 색깔을 만드는 데 기여한 것을 높이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일회성 봉사활동은 별 의미가 없다.
음악이나 운동은 단시간에 어떤 성과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입학 사정관 입장에선 학업과 별도로 인간적인 성장을 위해 잘 다져진 활동들의 성과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