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어디에나 있다고 쓰고 보니 왠지 더 헤매고 있는 나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레이시아에 온지 10년차.
아이들도 나도 '맹목적 당연'이라는 부제에서 벗어나 길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갈비뼈 사이사이에 쟁여둔 '편안한 타성'을 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일견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는 데에 그 시작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말레이시아를 오게 된 것이.
학원 열심히 다니고 좋은 대학,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는 직장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 뒤에서 채직을 들어야만 하는 학부모 문화에서 벗어나서 싶어서 문화도 생소한 이곳에 왔다.
여기 와 보니 당연한 것 하나도 없었다.
국적도 종교도 식성도 취향도 진로도.
그래서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비교 대상이 되기 어렵다.
각자의 길이 있고 각자의 진로가 있을 뿐,
그것에 대하 취조하듯 묻지도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어찌 보면 인간 관계가 평양냉면처럼 슴슴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슴슴함이 나에게 편안한 자유를 주었다.
새들이 각각 저마다의 날개짓으로 날아오르듯이
내 아이의 날개짓가 옆집 아이의 날개짓이 달라서 아예 비교하려야 할 수도 없었다.
그냥 각자 목표한 곳으로, 날고 싶은 곳으로 가면 그만.
그러니 말레이시아 국제학교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것은 사실 부모인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의 교육은 지금 생각해 보니 그야말로 핑계였다.
한국에 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내 아이 또래의 친구와 무심코 내 아이를 비교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수없이 많이 읽었던 교육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말레이시아로 탈출을 감행했다.
말레이시아에 와서도 순간순간 내려놓지 못한 부질없는 집착이 불쑥불쑥 올라와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멀었구나, 난 아직 많이 멀었구나 자책하며 아이의 간식을 준비한다.
쓰다 보니 고해성사 같은 느낌인데,
아무튼 당연하게 보이던 게 어느 날 낯설게 느껴질 때,
내 아이 성적을 보며 옆집 아이는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을 때,
두리안 냄새만으로도 침이 고일 때,
어느새 이방인의 생활에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구나 느낀다.